한반도에서 최대의 미스테리는... "북한의 핵폭탄"이었다.
지금,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문제는..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를 제거한다는 '비핵화'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그 미스테리를 망각한다.
첫째, 북한은 정확하게 언제, 핵폭탄 제조기술을 획득하였고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게 되었는가?
둘째, 핵폭탄 제조를 위해 필수적인 물질들과 그에 관련된 기술들을 언제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는가?
셋째, 핵폭탄 제조에 관련된 설비들을 어떻게 마련했는가?
대개의 사람들은 핵폭탄의 핵심원료인.. 우라늄과 플로토늄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원료물질을 획득하고 처리하는 기술이 핵심인 것은 맞지만
핵분열폭탄-핵융합폭탄 등을 성공적으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삼중수소 추출기술과, 핵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충격을 가하는 "고폭화약"기술도 필수적이다.
"원자폭탄"이라는 것을 착상하고 연구에 돌입한 것은 "독일" 과학자들이었다.
이 독일 과학자들이 핵폭탄을 완성한 것은... 독일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그것을 폭발시험이 아닌, 실제로 "폭발"시켜 적에게 타격을 가한 것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였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것은.. 전쟁/전투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실제상황을 상정한.. '실험'이었다고 봐야 한다.
멀쩡한 도시와 도시민들 위에서 핵폭탄을 폭발시키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해야할 필요성, 욕구가 강했던 것이다.
그런데.. 독일 당국은.. 영미 동맹국을 상대로한 유럽전쟁만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여,
지구 반대편인 '일본'을 전쟁에 끌어들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독일의 적국들과 전쟁을 벌이도록 만들었다. 일본은, 독일과 동맹을 맺고,
유럽전쟁에 호응하여, 태평양 서부에서 일련의 전쟁을 일으키면.. 나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여
전쟁을 기획했다. 이 기획의 일환으로... 일본도 독일의 과학기술을 전수받아.. 핵폭탄 연구에
돌입했다.
1941년에는 일본 육군 주도로... 동경대 이화학 연구소에서
1942년에는 해군 주도로, 교또제국대학에서.. 핵무기 연구에 착수했다.
일본 본토가 B-29의 폭격권에 들고, 동경대 이화학 연구소가 폭격을 받게 되자.
일제의 핵무기 연구소를.. 한반도로 옮겼다.
남한의 대전, 그리고 북한지역의 '흥남'이 그곳이다.
대전은 훗날, 박정희가 핵무기 연구를 시작할 때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고,
흥남은 1930년에 흥남질소비료 공장이 완공된 이후.. 거대한 산업기지가 들어섰으며,
미군의 주요 폭격 대상지였다. 이는 6.25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래 기사는 중앙일보, 1996년 8월 15일 정치면 기사다.
글 주소는, http://news.joins.com/article/3312193
2차대전 말기 당시 일본군이 북한의 흥남 화학공장에서 원폭을개발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워싱턴 국립공문서 보관소 미군기밀문서를 통해 밝혀졌다고 지지(時事)통신이 14일 워싱턴 발로 보도했다.
일본군이 2차대전 당시 극비리에 핵폭탄 개발을 추진했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실험 장소가 흥남 화학공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45년 작성된 미 극동군사령부의 비밀문서 564355호에 따르면 『원폭의 연구.실험이 흥남의 화학공장에서 행해졌고 관련시설은 소련군이 진주하기 전에 파괴됐다』는 것이다.
이 문서는 또 『일본군은 흥남 질소비료공장에서 암호명 「NZ」인 수소합성물에 의한 제트연료계획 실험을 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2차 대전 당시 독일도 제트연료계획이란 이름으로 원폭 개발을 추진했었다
중앙일보는 3년 뒤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도한다.
http://news.joins.com/article/3806993
미국은 옛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전 흥남 앞바다에서 원폭실험을 실시했다는 정보를 입수, 한국전쟁 당시 후환을 없애기 위해 흥남 화학단지내 핵의혹시설에 융단폭격을 가해 95%를 파괴한 것으로 밝혀졌다.
6일 지지 (時事) 통신이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기밀해제 문서에 따르면 지난 45년 8월 12일 새벽 흥남 앞바다 30㎞ 지점에서 옛 일본군이 원폭과 비슷한 거대한 버섯구름이 치솟는 폭발실험을 벌인 것을 미군이 포착, 전후 주일 연합군총사령부 (GHQ)가 비밀조사를 했으나 명확한 진상파악에는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45년 작성된 GHQ 문서도 ^옛 일본군이 흥남화학공장에서 원자력 관련 실험이 있었고^일본해군이 흥남에서 'NZ계획' 이라는 수소화합물질에 의한 제트연료실험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GHQ는 특히 흥남의 핵개발 관련 시설이 전후 소련에 접수돼 소련.일본 과학자들의 공동연구가 진행됐다는 정보를 입수해 공습이 가능해진 한국전쟁을 틈타 흥남의 옛 일본군 핵실험 시설을 대부분 파괴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단순한 "음모론"이 아닌, 합리적 의심과 추론을 할 필요가 있다.
6.25 당시, 서울을 수복한 "미군"은 주력을 둘로 나눠 진격시켰다.
한반도처럼, 폭이 좁은 단일한 "전역작전"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이렇게 주력을 둘로 나눠 북진시키는 것은... 정상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전쟁의 .. 한반도 전역에서 실제 전쟁지휘는 제8군 소관이다.
제8군 사령관의.. 상급자인.. 미 태평양 사령관 맥아더는.. 한반도 전쟁을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으로 나눴다.
미 제8군 사령관 워커의 휘하에.. 제1군단과, 제9단을 두고, 서부 지역으로 지격하도록 했다.
그리고
제10군단(+해병사단)을 워커의 지휘권에서 떼어내...
동경에 위치한, 맥아더 자신의 직접 지휘를 받으며,
태백산맥 동부로 진격하게 했다.
이처럼 좁은 지역에서, 전선을 동부와 서부로.. 양분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서부를 담당한 2개 군단을 서부전선 사령관(8군사령관)에게 맡겼지만
동부를 담당할 1개 군단을.. 도쿄에서.. 원격으로 조종하여.. 별개의 전쟁처럼 수행케 했다.
아몬드 10군단의 목표는.. 원산이었다. "왜 원산이었을까?"라는 이 질문은,
미 해군의 첩보선 "푸에블로호"는 "왜, 원산에서 얼쩡거리다가.. 피납되었느냐?"라는 질문과,
그 이듬해(1969년) 미 해군 정찰기 EC-121기가 "왜, 원산으로 추정되는 해상에서 격추되었느냐?"라는
질문에 맞닿아 있다.
6.25 당시, 원산으로 진출한 아몬드의 10군단이 내륙쪽으로 .. 장진호 방면으로 진출했느냐는 것도 의문이다. 멀리 도쿄에서.. 맥아더는 아몬드에게 '장진호 서쪽'으로 가서, 그쪽으로 넘어가서.. 서부 전선의 미 제8군과 접촉하여 전선을 연결하라고 명령했다지만, 정말 그렇게 해야할 중요한 목적이 있느냐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
흥남은 일제말기.. 아시아 최대의 공업단지였다. 더군다나.. 핵폭탄 관련 시설이 집중된 곳이었는데,
이 거대한 공업도시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2개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했는데,
그 중 하나가 부전강에 만든 부전강 수력발전소이고,
다른 하나가 장진강에 만든 장진강 수력발전소인데, 이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장진호다.
장진호는 그 둘레가 자그마치 80km를 약간 상회할 정도로 컸다.
맥아더가 바보가 아니고,
맥아더의 참모부가 어리석지 않다면.. 의도적으로.. 특수한 임무를 수행토록 하기 위해,
아몬드의 10군단을 의도적으로, 원산-흥남 방면으로 보내고, 장진호쪽까지 뒤져보게 한 것이 아니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
중공군 또한.. 한반도 서부, 즉, 압록강 하류에서 평양 방면으로 주력을 투입하고,
그 옆에 주력을 엄호하는 조공을 편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제9병단을.. "원산" 방면으로 보냈다.
이 제 9병단이.. 장진호 인근에서.. 아몬드의 10군단을 포위공격해서 벌어진 것이
저 유명한 장진호 전투다.
기밀해제된 문서를 앞에 놓고, 우리는.. 도대체 왜 맥아더는 전선을 이원화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제10군단을... 흥남지역에 보냈고,
장진호 전투 이후에.. 흥남철수를 하면서 흥남공업지역을 90~95%를
필요 이상으로 철저하게 파괴하고
그 주민들 10만명을 거의 반 강제로... 남쪽으로 소개했느냐를 묻는 동시에, 똑같은 질문을
중공군에게 던지면서, "어째서 중공군은 제9병단을 주 전선에서 분리하여..
원산 방면으로 보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일설에 따르면, 쏘련의 핵무기 완성에... 바로.. 흥남의 연구자료가 결정적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은?
1970년대에.. 주한미군은.. 전술핵을 한국에 배치했다고 했는데, 왜?
북한의 재래식 공격능력이 그토록 압도적이었는가?
모를 일이다.
현철하신 회원님들의 추리는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그 추론방식이 궁금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