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http://www.tongilnews.com/bbs/list.html?table=bbs_6&idxno=1736&page=2&total=1213&sc_area=&sc_word
=<긴 급 속 보 >
* 1979년 10월 26일 박 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던 김 재규가
사형집행 당한 것으로 가장 후 해외로 출국
* 1982년 미국 LA서 친북활동을 하던 노 길남 언론인도 김 재규의 생존 의혹을 미주통일신문 기자에게 탐문
* 당시 사형집행은 법무부장관의 사형집행서도 없었다고.... 보안과장과 군 부대에서 급파된 현역 군인 입회 하에 유언 예식도 생략 속결 교수형 집행했다고.....
1980년 5월 24일 서울 구치소에서 사형집행 당한 것으로 알려졌던 김재규가
당시 사형집행이 되지 않고 군용 특별기 편으로 해외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형집행관이었던 LA거주인 H 00 (남자. 음악 목사 활동 중. 1979년 당시 사형집행관. 현재 나이 68세. 전화 번호 등 신분은 추후 공개 예정)씨가 조금 전 25일(LA 시간) 오후5시 미주통일신문 기자와 인터뷰 과정에서 1차 밝혀졌다.
기자를 만난 제보자 H 음악 목사는
{나는 당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서울 구치소에서 일시 사형집행관으로 파견되었고, 당시 구치소 보안과장 '조찬극'(현재 나이 70세)과 단 둘이서 김 재규 이하 김 태규, 이 기주, 유 성옥, 박 선호의 사형집행을 했다.
사형수 목에 밧줄을 걸면 뒤에서 포인트만 눌렸을 때 그들은 지하로 떨어졌고 잠시 요동을 쳤으나 밧줄은 멈췄다....
그들은 아침 7시 부터 30분 간격으로 각각 교수대에 끌려나왔다.
그들 중에는 잠에서 덜 깬 채 정신없이 끌려 나오기도 했다....
이 때 사형집행장에는 서울 구치소 소장, 관련 검사, 목사 혹은 스님들이 입회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사형집행이 불법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 수 있다.
당시 조찬극 보안국장과 나하고 단 둘이서 5명을 집행했다.
사형집행 1번이 김 재규, 2번이 김 태규, 3번이 이 기주, 4번이 유 성옥, 5번 째가 박 선호 였다....
그러나, 김 재규는 일반 잡범이 김 재규로 가장하여 끌려 들어와 위장 교수형에 처해 졌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사형 집행은 3시간 후 오전 10시 경 끝났다. 5구의 사형수 시신들은 곧바로 앰블런스에 실렸다. 그 때 다섯 개의 관이 앰블런스에 실렸으나 김 재규는 수의 복장을 한 채 살아서 앰블런스에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당시 시신을 관에 넣고 못질을 할 때(입관 봉인 ?) 19개의 못을 박았으나 위장 된 김 재규의 관에는 33개 정도의 못을 박았다.
못을 33개를 박은 것은 타인이 관을 열수 없도록 한 것이었다.....
나는 당시 군 전투 복장을 한 채 사형집행관으로서 그들의 유언을 받아 적었다.
나는 그 때 "세상에 왔다가 가는데.... 유언이라도 남기는 것이 좋지 않느냐"라고 말하자 그들은 모두 유언을 남겼다.
그들이 유언을 남길 때 나는 군용 무전기 위에 종이를 놓고 그들의 유언을 하나 하나 씩 받아 적었다.....
그들의 유언 내용은 "자유 민주주의 만세 ! .... 아들 딸을 잘 키워 달라.... 처가 집에 연락 하여 나의 시신을 찾아가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다시 그는
{김 재규 등 시신을 담아 싣은 앰블런스는 하얀 색깔의 앰블런스 였다.
김 재규는 그 후 특별기 편으로 해외로 나갔다(더 구체적인 내용은 미주통일신문이 현재 상황에서 공개할 수 없다. 양해 바랍니다).... 나는 그 때 그 일로 괴로워 미국으로 왔으며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어지러움증을 일으킨다... 그들의 유언, 사형집행 시간 등을 기록한 자료가 집에 있다. 다음에 다시 만나서 보여 주겠다...
김 재규는 그 때 모 군 부대로 이동한 후 특별기 편으로 해외로 나갔으며
성형수술을 했다. 지금 나이로 70세 인가... 지금 살아 있을까...
참, 방송인 문성근씨가 [추적] 프로에서 당시 사형집행 상황 등을 방송했는데 다 틀렸다. 내가 그 방송을 보고 문 성근 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나는 작가가 써 준 대로 방송을 했다.."라고 말해 웃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당시 보안과장 등의 제보에 의하면
{서대문 형무소(현재 공원) 교수대 부근 지하를 파면 3천 여개의 유골이 나온다.... 일제 시대 부터 그 당시 까지 행방불명 된 사람들의 유골이 아직도 땅 속에 묻혀있다..... 또 청와대는 창경궁으로 연결된 지하 통로가 있다... }라고 알려 주기고 했다.
당시 사형집행을 단독 담당했던 보안과장 조찬극은 그 직후 대구 교정청장으로 일약 승진했다고.
미주통일신문은 다시 구체적인 사실을 인터뷰 하여 보도한다. < 계 속 >
http://www.unitypress.com/zboard/view.php?id=USNew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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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o가야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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